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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에서 자주 듣는 질문

간호사가 본 병원 속 여성 건강 인식의 현실 –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야기

by roselife3161 2025. 7. 18.

여성의 몸은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병원 현장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보면,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관심조차 갖지 못한 채 병원을 찾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건강검진은 미루고, 통증은 참으며, 부끄럽다는 이유로 중요한 검사를 피하는 모습들이 반복됩니다. 저는 10년 넘게 부인과 병동과 외래에서 근무하면서, ‘여성 건강’이 단순한 신체 문제를 넘어 인식의 문제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여성 건강 인식의 현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간호사가 본 병원 속 여성 건강 인식의 현실 –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야기
간호사가 본 병원 속 여성 건강 인식의 현실 –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야기

✅ 1. “부끄러워서 병원에 못 왔어요” – 질환보다 두려운 ‘시선’

제가 부인과 병동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부끄러워서 병원에 못 왔어요”라는 말입니다. 환자분들이 증상이 있었지만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병원을 찾지 못했던 이유가 ‘시간이 없어서’도, ‘돈이 없어서’도 아닌, 바로 ‘부끄러움’ 때문이라는 현실이었습니다. 이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저는 안타까움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특히 질 분비물 증가, 출혈, 가려움, 냄새 같은 부인과 증상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불편을 느끼면서도 스스로 ‘이 정도는 괜찮겠지’, ‘생리 전이라 그런가 보다’라고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저는 중등도 이상의 질염이나 자궁경부 병변이 발견된 환자에게 “이 증상이 언제부터 있었냐”고 물으면, “한 6개월 전부터요... 그런데 창피해서 병원 못 왔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습니다.

그런 태도 뒤에는 ‘여성 건강’이라는 주제가 여전히 금기시되거나 민감하게 여겨지는 문화적 배경이 존재합니다. 저는 보호자들 앞에서 설명을 해야 할 때, 환자가 창피해하지 않도록 배려하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표현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중한 표현이 때로는 중요한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여성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조심스러움”이라는 장벽 속에 갇혀 있으면, 결국 치료 시기를 놓치고 상태가 악화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저는 여성 건강은 더 이상 부끄럽거나 감춰야 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리’, ‘질염’, ‘자궁’ 같은 단어들을 일상적으로 말할 수 있을 때, 여성은 스스로의 건강을 제대로 이해하고 보호할 수 있습니다. 여성 건강에 대한 시선이 바뀌어야 여성 스스로 병원에 발을 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간호사로서 저는 그 ‘시선’부터 바꾸는 데에 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 2. “정기검진은 출산 끝나고나 하는 거죠?” – 오해 속에 묻히는 예방의 기회

많은 여성들이 건강검진을 ‘임신’이나 ‘출산’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출산을 앞두고나, 산후에나 부인과 검사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환자들을 저는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이라면 나이와 출산 여부와 무관하게 정기적으로 부인과 검진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는 병동에서 자궁경부암이나 자궁내막증, 다낭성난소증후군 등의 진단을 받고 입원한 20~30대 미혼 여성 환자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 중 다수는 “이런 검사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라고 말합니다. 검진은 이상이 있기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라, 이상이 생기기 전에 확인하는 것이라는 점을 환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은 간호사로서 매우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특히 자궁경부암 검진(Pap smear)은 만 20세 이상 여성에게 권장되는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자들이 해당 검사가 ‘결혼 후에나 하는 검사’ 혹은 ‘성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만 필요한 것’으로 오해합니다. 실제로 제가 외래에서 안내문을 건네드릴 때 “저는 결혼 안 했는데요”라는 반응을 들을 때마다, 사회적으로 여성 건강 검진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절감하게 됩니다.

간호사로서 저는 환자들이 부담 없이 질문할 수 있도록 먼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개인적인 건강 상태에 따라 어떤 검사가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단순히 ‘검사하세요’라는 말보다는, 왜 지금 필요한지, 검사를 안 하면 어떤 위험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 환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는 걸 자주 보게 됩니다.

‘예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여성 건강 인식이 바뀌어야 검진의 시기도 앞당겨지고, 질환의 조기 발견과 치료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변화’의 가장 가까운 현장에 있는 간호사로서, 올바른 인식을 전하는 작은 안내자가 되고 싶습니다.

 

✅ 3. “여성의 몸, 내가 가장 늦게 이해한 대상이에요” – 자기 몸에 대한 무관심

제가 근무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 중 하나는, 많은 여성들이 자기 몸에 대해 지식은커녕 관심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을 느낄 때입니다. 생리 주기가 불규칙하거나, 분비물의 변화가 있었거나, 통증이 주기적으로 있었던 경우에도 “그게 문제가 되는 줄 몰랐어요”라고 답하는 환자들을 자주 만났습니다. 여성의 몸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그 변화에 대해 이상 반응인지 아닌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란통, 생리통, 월경 전 증후군(PMS), 성교통 등의 증상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흔한 증상입니다. 하지만 그 증상의 정도와 패턴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여성은 극히 드뭅니다. 심지어는 생리 날짜조차 외우지 못해 검사 일정을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환자들에게 “생리 시작일이 언제셨나요?”라고 물을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에 따라, 여성 건강의 현실을 체감하게 됩니다.

간호사로서 저는 환자에게 자기 몸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곧 건강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단순히 아프면 병원에 오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알아차리고, 기록하고,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 여성 건강을 지키는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나의 몸은 내가 관리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여성 환자에게 “질 분비물이 평소와 달라졌다는 걸 언제 처음 느끼셨어요?”라고 질문할 때, “그런 건 평소에 잘 신경 안 써서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가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여성의 몸을 어떻게 교육해왔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여성 건강 교육은 단지 의학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인식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저의 간호 철학입니다.

 

✅ 마무리
여성의 건강은 단순히 병원에서 진료받는 것을 넘어, 자기 몸에 대한 인식과 관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간호사로서 저는 환자 한 명, 질문 하나, 설명 한 문장이 결국 여성 건강 인식을 조금씩 바꾸는 힘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이나 ‘무관심’이 아닌, 이해와 선택으로 자기 건강을 돌보는 여성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블로그는 그런 변화를 만들기 위한 작은 이야기의 공간입니다. 앞으로도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눈높이에 맞는 여성 건강 정보를 꾸준히 전해드리겠습니다.